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책 중에서 채식주의자는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 당시 나는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책을 버려버렸다. 그만큼 미친듯한 몰입감을 줬으며, 그만큼 불편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한강 채식주의자 줄거리와 결말 해석과 리뷰를 시작해 본다.
한강 채식주의자 줄거리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연속되는 세 개의 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로 되어 있다. 주인공 “영혜”는 모든 소설에 등장하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어느 날 꿈에서 피가 흐르는 생육을 먹고 난 후, 고기를 못 먹게 된다.
그녀는 육식을 거부하더니 나중에는 육식 아래 깔린 폭력성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점점 그녀를 이해 못 하는 남편과 친정 식구들은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고 하다가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결말은 쉽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미래의 독자를 위해 여기까지만 쓰고 아래서 해석 리뷰만 할 생각이다.
두 번째 [몽고반점]은 미디어 아트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가 영혜에게 몽고 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제에게 묘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그는 누드로 몸에 꽃을 그려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결국 영혜와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고, 몸을 포갠 후 촬영을 하고, 그 영상을 본 아내는 남편을 혐오한다.
세 번째 [나무 불꽃]은 영혜 언니가 남편과 이혼하고 정신 병동에 있는 영해를 찾아간다. 영혜는 자신이 나무라서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하며, 생명을 죽이는 폭력성의 반대하며 채식을 포함한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채식주의자 리뷰
줄거리를 간단히 적었는데 ‘내용이 저게 뭐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기를 추천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데도 다음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충격과 나까지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역겨움에 나는 책을 버려버렸다. 줄거리가 충격적이라기보단 한강의 섬세한 문장력 때문이었다.
채식주의자 결말 해석
자, 이쯤 되면 난해한 이 책의 해석이 궁금할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한 가지 힌트를 얻었다. 바로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가 맨 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독자들에게 남긴 말이었는데, 이 책을 질문으로 봐 달라는 거였다. 어떤 질문이 냐면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근데 채식, 육식, 폭력성은 무슨 관계일까? 육식은 한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폭력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책에선 채식으로 대표되지만, 결국 작가는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을 말하고, 이타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의 두 가지 모습이 만연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인간은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생산하기 위해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생명이 아닌 고깃덩어리로서 많은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가족이란 이유로 인지도 못하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책 속에서 영혜는 자신의 몸 중에서 믿을 건 가슴밖에 없다고 하며, 가슴은 아무것도 해치지 않으므로 가슴이 있는 한, 자신은 괜찮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한강 작가의 스스로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거냐고 말이다.
우리가 책을 읽기 전이 꿈꾸기 전의 영혜와 같은 거다. 일상적인 폭력에 길들여져 아무렇지도 않았듯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고, 책을 읽고 난 후 질문을 받은 거다. 당연히 그 해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영혜는 그래서 식물, 동물로 대표되는 모든 생명을 죽이는 것을 하지 않는 햇빛만으로 살아가는 나무가 돼버린 거다.
마무리
영혜가 산 채로 새를 먹는 것을 보고 우리는 잔인하다 느끼겠지만, 결국 내 손에 피를 묻치지 않았을 뿐, 생명에 대한 폭력을 늘 묵인하고 있을 뿐이다. 영혜가 가슴이 있어 세상을 견딜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답을 찾아야만 한다. 책의 줄거리를 아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자신의 생각이 파괴되고, 생각의 계기가 될 때 의미가 있는 거다. 이상 개인적인 한강 채식주의자 줄거리 해석 결말 리뷰였습니다.